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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magic 이전과 이후

서양사람들은 카메라의 이름을 참 운치 있게 짓지 않는가? 검은마술.정확히는 Blackmagic Pocket Cinema Camera인데 뜻이 ‘주머니에 들어가는 영화용 카메라’. 물론 내가 쓰던 BMPCC 6K는 주머니는 커녕 가방에 넣기도 힘든 큰 사이즈인데 처음 개발되었던 초기 버전은 매우 작았다고 한다. 결국 지난해에 새로 나온 신버전은 아예 Pocket이란 단어를 빼버릴 정도도 커졌다.

2020년 7월 이전까지 날카로운 선(Line)을 중시하는 일본카메라를 평생 써오다, 유튜브의 넓디 넓은 정보력 덕분에 나는 이 카메라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10억개의 색상(10bit)을 촬영하다가 이 카메라를 만난 이후로는 약 680억개의 색상(12bit)으로 세상을 담아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0억개 색을 찍다가
680억개의 색을 찍게 된 후.
내 모니터는 고작 1670만 색상인데 편법으로 좀더 보여준다고 FRC

물론 중요한 사실은 결국 최종 시청자들이 보는 모니터나 TV, 그리고 중저가 스마트폰에서는 보통 1670만 색상(8bit)을 보여주고, 가격이  많이 비싼 제품들이 10억개 색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언뜻보면 680억 색상을 촬영한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진다.

하지만 전문 영화관 카메라는 35조 색상(16bit)을 찍기도하니까 분명 무슨 까닭이 있는 법. 일단 내가 느끼는 장점은 편집할 때 색상 보정에서 자유도가 높아서 창의적인 변화를 허용하며, 색상을 풍부하게 담는 다는 것은 사실 사물의 형태(라인) 포착에도 상당히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는 점. 색과 라인은 서로 다른 게 아니었더라는.

더우기 색상의 갯수만 늘어나는게 아니고 밝기의 그라데이션 변화도 이전 카메라에서는 고작 256단계 밖에 안됐었는데 블랙매직 이후에는 4096단계로 부드럽게 변화되는 장면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

왼쪽영상은 2020년 7월에 세화해변에서 촬영했던 것이고, 오른쪽은 표선해변에서 촬영하던 모습. 그런데 문제가 있었는데 이정도 무거운 카메라를 처음 사용해봤고, 게다가 짐벌에 얹어서 촬영을 해야했고 또…. 얘는 태생이 AF가 전혀 안된다. 날씨는 무더운데 짐벌을 잡은 채 땀은 뻘뻘 나는데, 촬영 결과물은 촛점이 안 맞아서 짜증과 속상함의 결합… 내 고생하는 모습을 동그란 눈망울로 쳐다보는 예진이…

공부가 많이 되었고, 색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던 시간. 요란한 카메라 액션, 흥미로운 스토리에 못지 않게 고요힌 움직이지 않고 빛을 발하는, ‘색’이라는 것이 얼마만 소중한 요소인지를 깨달았던, 예진이와 나에게 혁명과 같았던 사건이었다. 요즘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유튜브, 그거 카메라고 영상미고 다 필요없어. 콘텐츠가 중요해.  여행하면서 스맛폰 하나로 대박난 영상들 많찮어?”

러시아의 현대 인상주의 화가 Leonid Afremov와 한국 겸재 정선의 산수화. 그리고 현대의 ‘콘텐츠’의 의미와 역대 한국의 ‘색채’에 대한 관념. 지금도 색채와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은 서양과 동양이 서로 차이가 난다. 한국인들, 왜그리도 사랑을, 여자를, 색을 혐오해왔는지…

아무튼 색을 밝히며 살아왔던 나에게 유튜브는 다행히도 양쪽 모두를 수용하고 있는 바다와 같은 세계라는 것. 영상미도 엄연히 콘텐츠이고, 대박난 것들이 뮤직비디오와 영화 아니던가? 

…라고 생각하며 다시 색을 밝힐까 했지만 결국 두달 정도 사용하다가 운용하기 힘든 어려가지 이유로 팔아버렸다…가 다시 다음해 1월 겨울에 긍정과 도전 정신으로 재구입했다….가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흑백 뮤비만 열심히 촬영했으니….

Cavalleria Rusticana
Lar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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