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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첫 마을, 온평리

 따듯하고 평평해서 溫平里.

제주 이주 생활의 시작, 온평리. 처음 이사 왔을 때에는 전혀 몰랐었다. 온평리가 제주도에서 가난한 동네라는 것을. 우리는 그저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마을을 선택했을 뿐. 예진이나 나나 육지에서 모진 삶에 지쳤던 사람들이라
정말로 온평리가 참 좋았었다. 왠지 온달이와 평강공주가 나올법 한데, 그러잖아도 혼인지 婚姻池 동네였다.

펜타곤 135mm 올드 렌즈가 하나 생겨서 예진이와 마을 안 동네를 산책나갔다. 오래된 렌즈답게 왜그리도 뿌옇고 촛점도 안맞던지. 그래도 예진이는 예쁜 사진을 기대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이때만해도 예진이는 카메라 앞에서는 표정이 촌뜨기, 순둥이.

제주도 도착한 것이 늘 행복했고, 아무것도 몰라서 설레이는게 많았던 나날들. 역시나 저 동네가 가끔 그립
다. 물론 지금 사는 곳과 멀지는 않지만.

나는 어린 시절이 불우했었기에 항상 미래가 그리웠었는데, 지금은 과거도 그리워진다. 사람이 앞으로 뒤로 그렇게 그리움에 낑기는 것이 많아지면 노래를 부르고, 글을 적고, 춤을 춰야 한다. 그리움은 없는 것을 그리워하는 것이기에 그 마음을 채울 현실의 방법은 없거든.  스스로 형상을 만드는 수 밖에. (2024.3)

섭지신양 해안

신양리는 성산리와 온평리 사이에 있는 마을인데 참 안 유명하다. 당연히 우리는 안 유명한 곳일 수록 좋아해서 자주 산책을 가고 낚시도 했던 곳.
예진이는 나랑 다니면 항상 손을 꼭 잡고 따라다니기 때문에 우리 비쥬얼이 코난과 나나인데 실제로 나는 맨손으로 고기를 많이 잡긴 했다. 돌을 던져서.

이웃 마을, 신산리

이주 생활의 시작무렵이니 제주도는 어딜가나 좋기만 했고, 역시나 안 유명하고 사람이 적을 수록 우린 더욱 행복해 하는 디비리  바보부부.  신산리가 그런 마을이었다.
굉장히 조용한 동네였고 특히나  따스한 3월이 유채꽃이 아름답게 기억이 된다. 그 곳 해안가의 마을 카페에서 관리하시는 여자분과 오랜 담소를 나누었는데, 아마도 현지인과 그토록 얘기를 나눈 것이 처음이었을 게다.
카페 글렌코 근처의 목장

예진이가 아름다와했던 목장. 그때는 아무 목장이나 보면 다 아름다왔다. 사람의 마음 상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하얀 안개가 차 있으면 세상이 하얗고 보드랍게 보이듯이 내 마음에 파란 슬픔이 있으면 세상이 파랗고 애잔하게 보인다.
육지에서의 내 마음은 온통 회색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제주에서는 들을 가면 하얀 안개가 차고, 바다에 가면 하얀 파도가 인다. 내 곁에는 동그란 눈을 가진 예진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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